순수의 의미

사진에서도 순수의 의미는 참으로 많이 적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 순수사진은 아마 가장 크고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을 듯 하다. 이점에서 20세기 초반 비국의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straight Photography)”를 우리말로 순수사진으로 번역해서 썼던 것은 다소 그릇된 것이다.
순수사진은 그야말로 순수한 사진을 말한다. 작가의 마음에서부터 빛과 색 그리고 피사체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정화된 마음에서 출발한 사진, 조작되지 않은 그 자체의 빛, 색, 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 이렇듯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인 사진이 순수사진이다.
물론 그럿다고 하여 핀이 맞지 않은 사진,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 발색이 제대로 되진 않은 사진, 일반 사람들이 마구 찍은 사진들이 순수 사진이고 그것들이 곧 의미있는 사진이라는 말은 아니다. 순수보다 사진이 먼저 있으며, 그 사진에는 이미 예술적으로 혹은 미학적으로 우리에게 의미를 던지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결코 카메라에 피름넣고 생각없이 찍은 사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순수사진의 조건은 예술적 의미를 갖되 그것이 밖으로 넘쳐나거나 과용되지 않는 사진, 피사체를 필요이상 강조하지도, 작가의 욕심을 드러내지도 않는 사진, 특별한 기법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 그것이다. 평평한 사진도 전략적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전략도 깃들어 있지 않은 사진이 순수사진의 순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경덕의 사진은 바로 그러한 것들을 보여준다. 삶의 반복, 당연시 받아들여지는 일상성, 그리고 그것들과 자신과의 관계,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의 의미는 바로 평범한 눈앞의 이불에서 튀어 나온다. 하찮은 이불에서 실로 무거운 삶의 의미 그리고 인간존재의 철학적 의미를 아는 것이다. 예술과 미학의 준거틀인 형상성에 있어서도 그녀의 사진은 튀지 않는다. 자연광, 인공광 할 것 없이 이미 주어진 빛, 이미 던져진 빛을 그대로 수용한다.
현실의 빛은 결코 강하지 않으며, 빛에 조우되는 색 또한 강하지 않다. 이불이 가지고 있는 색 그리고 거기에 내려앉은 햇빛이나 형광불빛 혹은 그것들의 혼합된 빛이 만들어 낸 색 역시 강하지 않다. 진광불휘, 참다운 것은 발하지 않는다는 말, 참다운 사진은 튀지 않는다는 말,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말, 이것이 순수의 의미이다.

<참고자료:사진예술 2000년 2월호>